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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종족주의 - 반일종족주의에 대한 고발 본문
2021.4.1 작성, 다음블로그 -> 티스토리 이전(2022.12.09)
지은이 : 황태연 外
출판사 : 넥센미디어
출판년 : 2019
목차
▶ 프롤로그 ……… 12
제1장 총론 : 부왜노들의 역사부정에 대한 비판과 반국가활동에 대한 고발- 황태연
제1절 대한민국은 저항적 민족주의로 건국된 반일독립국가 ……… 18
제2절 부왜노附倭奴들의 반국가 심리에 대한 분석과 비판 ……… 28
제3절 일본회의의 일제종족주의 대對 한국의 저항적 민족주의 ……… 37
제4절 한국은 일제 식민통치시기에야 비로소 근대화되었나? ……… 45
제5절 왜정 때 한국인은 왜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았나? ……… 78
제6절 반국가단체 ‘일본회의’의 ‘역사전쟁’과 대한對韓공격 ……… 84
제7절 부왜노들의 반국가활동을 법률로 규제하는 길을 터야 ……… 85
제8절 글을 맺으며 ……… 103
제2장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본질 - 이영재
제1절 분노하는 이유 ……… 108
제2절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객관적 이해 ……… 115
제3절 강제연행의 실상 ……… 128
제4절 위안소의 실태 ……… 143
제5절 대한민국 입법부의 역할을 기대 : 역사부정죄 제정! ……… 149
제3장 식민시기 역사왜곡의 절정 - 이영재
- 조선총독부식 육군특별지원병·학도지원병제 왜곡 비판 -
제1절 부왜노의 황국신민화 찬양 ……… 166
제2절 적나라한 출세욕망, 황국신민의 선언 ……… 173
제3절 학도지원병 모집 총력전 ……… 182
제4절 학도병들의 탈주와 투쟁 ……… 193
제5절 식민지 조선청년의 삶과 분투를 기억할 필요 ……… 200
제4장 위계와 위력에 의한 강제징용 - 서창훈
제1절 일제종족주의자는 누구인가? ……… 206
제2절 위계와 위력에 의한 동화 : 민족말살 ……… 212
제3절 위계와 위력에 의한 노동동원 : 강제징용 ……… 222
제4절 위계와 위력에 의한 강제성 확인 : 대법원 판결 ……… 232
제5절 착한 일본 만들기 ……… 238
제6절 글을 맺으며 ……… 244
제5장 식민지근대화론 비판 - 유용화
제1절 들어가는 말 ……… 250
제2절 대한제국시대에 이미 근대화되었다 ……… 257
제3절 토지조사사업과 산미증식계획의 진실 ……… 265
제4절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의 가면을 벗긴다 ……… 274
제5절 식민지 조선의 경제 관계가 EU와 동일한 효과 ……… 286
제6절 맺음말 ……… 296
제6장 고종의 항일투쟁사 그리고 수난사 - 김종욱
제1절 식민사관과 ‘고종 죽이기’ ……… 302
제2절 녹두장군에게 전달된 고종의 밀지 ……… 312
제3절 ‘아관망명’으로 임시정부 수립한 고종 ……… 317
제4절 일제의 고종 분시焚弑 · 납치 시도 ……… 323
제5절 고종의 거의밀지와 국민전쟁 ……… 329
제6절 연해주망명정부 수립을 계획한 고종 ……… 343
제7절 고종과 ‘대한독립의군’, 그리고 「관견」 ……… 348
제8절 고종의 독시毒弑와 3 · 1대한독립만세운동 ……… 354
제9절 고종의 죽음을 불사한 독립투쟁 ……… 362
보론 시대의 여걸이었던 명성황후 ……… 366
제7장 한국영토로서의 독도의 역사적·국제법적 지위 - 홍찬선
제1절 ‘독도포기역적죄’를 고발한다 ……… 376
제2절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인 이유1 : 자연, 지리적 조건 ……… 382
제3절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인 이유2 : 역사적 지배 ……… 387
제4절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인 이유3 : 국제법 ……… 398
제5절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인 이유4 : 실효적 지배 ……… 418
제6절 독도를 확실히 지키는 역사전쟁 ……… 422
▶ 에필로그 ……… 429
이영훈 등의 낙성대 연구소에서 출간한 『반일 종족주의』에 대한 반론과 반국가 행위에 대한 고발의 내용을 담고 있다. 사실, 반일 종족주의를 읽고 난 후 피가 끊어오르는 분노를 느꼈는데, 내 수준에서 객관적인 사료를 바탕으로 반박한다는 것이 불가능하여 안타까울 뿐이였다. 이 책은 베스트셀러에도 오르는 등, 많은 이들이 잘못된 식민사관을 받아들였을 것을 생각하니 나 조차 씁쓸한데 역사학자들은 오죽 했으랴. 다행히 오늘 학교 도서관에서 『일제 종족주의』라는 책을 발견했고 정확히 내가 반박하고 싶었던 내용들이 들어 있다는 걸 확인했다. 편협한 논리 전개를 통해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고 위안부나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서는 자신들만의 논리에 적합한 근거를 대서 일반화 할 뿐, 실제 보고서에 있는 불리한 근거들은 언급조차 없다는 것이 근거 박약을 말하고 있다. 한편, 고종이 나약한 군왕이었으며 실질적으로 을사오적에 버금갈 정도로 나라를 팔아 넘겼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고종의 항일 운동 지원 등 독립을 위한 노력들을 사실에 근거해 반박하고 있다.
그 중 위안부 피해자에 관련된 내용과 고종의 항일활동과 관려한 내용들에 대해서 인용, 정리 해 보았다.
1.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이해
A. 반일 종족주의에서의 주장
첫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한국의 이해에 문제가 있다.
-> "저는 위안부제를 일본군의 전쟁범죄라는 인식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당시의 제도와 문화인 공창제의 일부였습니다."
둘째, 일본이 인정하지 않는 일본군 문제는 사실이 아니다.
-> "어느 일방이 상대방이 인정하지 않은 사실을 실재한 것처럼 주장하면, 토론이나 타협은 어렵습니다."
B. 일제 종족주의의 반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국제법상 강행규범(Jus cogens) 에 속하는 문제다. 국제법상 강행규범은 국제공동체 전체의 차원에서 근본적으로 중요한 가치와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유엔과 국제사회의 기준은 중요한 두 개의 보고서를 통해 정립되었다. 첫 번째 보고서가 1996년 유엔인권소위원회에서 채택된 '쿠마라스와미 보고서'다. 이 보고서가 중요한 이유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성노예로 명명한 최초의 보고서이기 때문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자신의 의지에 반해 누군가에 의해 강압적으로 통제 당했다. 아울러 이 보고서는 일본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인권침해는 명백히 국제법 위반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일본에 대하여 국가차원의 손해배상, 책임자처벌, 정부보관중인 모든 자료의 공개, 피해자 개개인에게 서면을 통한 공식사죄, 역사적인 진실을 반영하기 위한 교육과정 개편 등을 권고하였다.
두 번째 보고서가 1998년 8월 12일 유엔 인권소위원회에서 채택된 '맥두걸보고서' 다. 이 보고서는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본질을 '성노예제' 라고 분명히 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관련하여 기존에 많이 사용하던 위안소 (brothel) 라는 명칭을 아예 '강간센터(rape center, rape camp)' 로 규정했다. 또 보고서는 당시 위안소는 ①군대의 직접관리 하에 있는 경우, ②형식적으로는 개인에 의해 운영되나 내용적으로는 군대의 지배하에 있는 경우, ③군대가 우선권을 준 개인에 의해 운영되는 경우 등 3가지 유형이 있었는데, 이를 통해 확인되는 사실은 일본정부가 군위안소 운영에 직접 관여한 것이 명백하다고 밝혔다.
'맥두걸 보고서' 에는 그동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관련하여 일본 정부가 조사하고 고노담화를 통하여 그 사실을 인정한 내용이 9. (a)~(g) 에 걸쳐 요약·정리되어 있다. 아래는 그 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9. 일본 정부 자신의 보고서에 의해, 다음과 같은 관련 사실이 밝혀져 있다.
(a) 위안소 설립의 이유 : 위안소는 당시의 군부의 요구에 의하여 다양한 지역에 설치되었다. 당시의 정부의 내부문서에 따르면, 위안소 설치의 이유로서 점령지역의 주민에 대한 일본군장병의 강간 기타의 위법행위의 결과 반일감정이 조성되는 것을 막고, 성병 기타의 질병에 의한 사기의 저하를 막고, 스파이 활동을 막을 필요성을 들고 있다.
(b) 시기 및 장소 : 1932년 소위 상해사변 당시, 현지에 주둔하는 부대를 위해 위안소가 설치되었다는 사실은, 복수의 문서에서 드러나 있다. 따라서 위안소는 이 무렵부터 제2차 대전 종결 시까지 존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쟁의 확대에 수반하여 위안소는 규모와 설치지역이 모두 확대 되어 갔다.
(c) 민간업자에 대한 군의 감독: 다수의 위안소는 민간업자가 운영하고 있었지만, 지역에 따라서는 당시의 군이 직접 운영하는 예도 있었다. 민간업자가 운영하는 경우에도 당시의 일본군은 개업의 허가나 설비의 마련, 혹은 개업시간이나 요금을 정하는 등의 수단으로 위안소의 설치·운영에 직접 관여하고, 설비 이용에 대한 주의나 규제 등을 결정했다.
(d) 건강상태에 대한 군의 관리: 위안부의 관리에 관해 당시의 일본군은, 위안부와 위안소의 위생관리를 위해 피임기구의 사용의무 등을 위안소의 규칙에 포함시키기도 하고 성병 기타의 질병에 대한 군의관에 의한 위안부의 정기검진 등의 조치를 취했다.
(e) 이동의 자유의 제한: 위안소에 따라서는 운영규칙을 정하여, 휴식시간이나 휴식시간에 나갈 수 있는 장소를 한정하는 등 위안부를 관리했다. 어쨌든 전지에서는 여성들이 상시 어쩔 수 없이 군과 함께 이동하여야 했으며 자유를 박탈당하고 비참한 상황을 견디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것은 명백하다.
(f) 징집: 많은 경우, 군부의 요청을 대행하는 위안소 관리자의 의뢰를 받은 민간업자가 위안부를 징집했다. 전쟁의 확대에 수반하여 위안부의 수요도 높아졌기 때문에 이들 업자는 많은 경우, 감언이나 협박의 수단으로 여성을 모집하고, 여성들은 자기의 의사에 반하여 응모하게 되었다. 개중에는 행정관리나 군요원이 징집에 직접 관련된 경우도 있었다.
(g) 이송: 여성들은 군함이나 군용차로 전지까지 옮겨지고 일본군의 패주의 혼란 속에서 그곳에 방치된 경우도 많았다.
맥두걸 보고서는 이러한 사실에 기초해 다음과 같이 보고하고 있다.
10. 일본 정부가 명기한 이러한 수많은 사실을 살펴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소위 "위안부"가 민간업자가 운영하는 매춘숙에서 '일하고 있었다'고 하는, 지금까지 수도 없이 반복되어 온 주장과는 반대로 다수가 당시는 아직 어린이였던 이러한 여성들은 일본군에 의해 직접, 또는 일본군의 충분한 인식과 지원에 의해 실제로 강간소에서 노예를 강요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 "위안소"에 자기의 의지에 반하여 수용된 여성과 어린이들은 그 범죄의 본질이 실로 '인도에 대한 죄' 라는 용어로 밖에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강간과 성폭력을 당한 것이다.
한편, 2007년 7월 30일 미국 하원이 채택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결의안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제도를 집단강간, 강제낙태, 굴종, 신체절단, 죽음, 성폭력을 포함하여 잔학성과 규모면에서 20세기 최대의 인신매매범죄라고 규정하였다. 유엔인권이사회에서도 2008년 6월 12일 일본 정부에 대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법적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 다수가 수용할 수 있는 형태로 사죄할 것을 권고했다.
2. 강제연행의 실상
A. 반일 종족주의에서의 주장
첫째, 강제연행은 단 한 건의 사례도 확인되지 않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둘째,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 자료는 조작되었다.
B. 일제 종족주의의 반론
2002년 미국 정부기록물보존소(NARA) 에서 발견된 문서 <Korean and Japanese prisoner of war in Kunming, 28, 1945> 는 중국 쿤밍지역에서 1945년에 미군에 의해서 작성된 것으로 "생포된 한국인 여성 23명이 모두 위안부 피해자였는데, 이들은 모두 강제(complusion)와 사기(misrepresentation) 에 의해 위안부가 되었다." 고 기록하고 있다.
1992년 1월 요시미 요시아키 교수가 발견하여 공표함으로써 일본정부가 일본군의 관여를 인정하게 된 계기를 만든 자료가 "군위안소 종업부 등 모집에 관한 건(1938.3.4)" 이다. 이 자료에는 "모집방법이 유괴와 유사하여 경찰 당국에 검거되어 조사를 받는 자가 있는 등 주의를 요하는 자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3. 위안소의 실태
A. 반일 종족주의에서의 주장
첫째, 시시콜콜한 세부에 이르기까지 업주와 여인의 관계를 포함하여 조선총독부의 공창제와 달라진 것이 없다.
둘째, 위안부 피해자는 계약이 만료되면 떠날 수 있었고, 고수익을 올렸다.
B. 일제 종족주의의 반론
해외 연구성과들에 따르면 당시 강간소에서 일본군에 의해 노예화된 여성들의 대부분은 11세에서 20세였으며, 일본의 지배를 받은 아시아 전역에 수용되었고, 매일 수차례 강제적으로 강간을 당했으며 심각한 신체적 학대와 성병에 노출되었다.
또한, 일본은 패전이 임박하자 '위안소'를 운영한 사실을 은폐하기 위하여 유기와 살채 등 잔혹행위들을 저질렀다.
4. 고종에 대한 평가와 역사훼손
사실 고종에 대한 평가와 역사적 사실들은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완전히 새롭게 해야 했다. 그만큼 알고 있는 것이 거의 없었으며 -단지 헤이그 밀사파견과 아관파천 이정도의 지식밖에 없었다- 그릇된 역사적 인식을 갖고 있었다. 먼저 고종은 나라를 팔아넘긴 무능한 전제군주라는 인상이다. 이것역시 여지없이 깨져버렸다. 고종은 개화파 보다도 세계정서에 밝았으며 일본의 조선 찬탈 야욕을 누구보다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갑신정변, 청일전쟁, 민비시해, 러일전쟁, 을사늑약, 경술국치 등 굴욕적인 일제의 찬탈 과정에서 끊임없이 저항하려했고, 때를 기다려 조선의 독립을 위한 계획을 추진했던 인물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별입시들을 통해 의병투쟁을 모의했고, 연해주나 북경으로의 망명 후 해외 독립운동을 끊임없이 시도했다. 동학농민군이나 각지 의병들에게 밀지를 전달한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고, 여러차례 죽음의 위협을 겪고 실제로 경운궁 방화로 죽을 뻔한 사건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제 고종의 죽음 또한 암살로 추정되며, 이것이 3.1운동을 촉발하게 된 매개체가 되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일제 종족주의』는 『반일 종족주의』를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이들의 실체를 폭로한다. 안병직, 이영훈, 김낙년, 이우연 등이 지휘체계를 갖추고 운영하는 낙성대경제연구소와 이승만학당은 일본회의와 아베내각의 역사관을 한국에서 대변하며 일본 내 신新제국주의자들과 동일보조를 취하고 있다고 한다.
위에서 인용한, 위안부 내용 이외에도 징용, 학도병 징병, 식민지 근대화론, 고종 죽이기, 독도에 일본측 주장대변 등과 같은 허무맹랑하고 매국적인 정신세계에 사로잡힌 이들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으니 두 책을 모두 읽어 보시고 어떤 것이 객관적이고 올바른 역사인식인지 직접 판단해 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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