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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만큼 성공한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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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만큼 성공한다.

Actruce 2022. 12. 9. 21:12

2020.12.03 작성. 다음블로그 -> 티스토리 이전(2022.12.09)

 

노는만큼 성공한다, 김정운, 21세기 북스

 

목차

 

1부 나는 놈 위에 노는 놈 있다

  1장 한국, 놀 줄 몰라 망할지도 모른다.

  2장 일의 반대말은 여가가 아니라 나태

  3장 놀이는 창의성과 동의어

  4장 놀이는 최고의 의사소통 훈련

 

2부 삶을 축제로 만들자

  5장 즐겁지 않으면 성공이 아니다

  6장 밸런스 경영_일과 삶의 조화

 

에필로그 그러는 당신은 어떻게 노시나요?

 


김정운 전 명지대 교양학부 교수. 예전에 우연히 TV에서 강의를 본적 있었다. 특히, 독일 통일 과정을 생생히 눈 앞에서 확인했다는 그의 이야기가 재밌으면서 기억에 남아 있었다. 오랫만에 유튜브를 보다가 그 분이 뭐하는지 확인해 보니 지금은 교수직을 그만두고 일본에서 그림을 배우고 돌아와 여수에 작업실을 차려놓고 그림도 그리고 책도 쓰고 하신단다. 그래서 그 분이 쓴 책들을 몇 권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보았는데 이 책 『  노는만큼 성공한다』가 가장 눈에 띄었다.

 

불과 주 5일제가 시행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노동시간 단축을 걱정하며 줄어든 노동시간이 경제 성장에 발목을 잡진 않을지, 이렇게 계속 노는 시간이 증가하여 제 2의 IMF 가 오는 것은 아닐지 걱정하는데 그것은 기우에 불과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책을 쓴 시점에는 소득 2만불 시대가 아직 오지 않은 때라 여가 생활을 잘 경영하는 길이 소득 2만불 시대로 진입하는 하나의 방법임을 주장하기도 한다.

 

책을 보면서, 쓸데없이 고민만 많고 제대로 놀줄 모르는 나에게 적합한 조언이 없나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많이 와닿았던 부분들을 발췌하여 되새겨 보고자 한다.

 


심리학에서 본 걱정거리의 실체

 

한 심리학자가 사람들의 걱정거리를 모아서 분류해보니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왔다고 한다.

- 우리가 걱정하는 것들의 40퍼센트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즉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한다는 것이다.

- 30 퍼센트는 이미 일어난 일들에 관한 것들이다. 이미 엎어진 물을 걱정하는 것처럼 바보 같은 일이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일들에 대해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

- 22퍼센트는 아주 사소한 일들에 대한 걱정이다. 우린 정말 '걱정도 팔자'인 일들에 관해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낸다.

- 우리가 걱정하는 일의 4퍼센트는 우리가 전혀 손쓸 수 없는 일들에 관한 것이다. 결국 걱정해봐야 자신만 손해보는 일이다.

- 이제 4퍼센트만 남았다. 이 4퍼센트만이 우리가 정말로 걱정해야 하는 일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나머지 96퍼센트 걱정거리 때문에 이 4퍼센트의 일들을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무엇이 '오버씽킹'인가

 

지나치게 생각이 많아 부질없는 걱정이 떠나지 않는 현상을 가리켜 미시간 대학교 심리학과의 놀렌-획스마Nolen-Hoeksema 교수는 '오버씽킹 over-thinking' 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오버씽킹이란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는 현상을 뜻한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 이미 내뱉은 말에 대한 후회, 다른 사람에 대한 근거 없는 의심, 지나가면서 던진 동료의 한마디에 도무지 끝이 나질 않는 추측 등.

 

상황에 따라 당연히 걱정해야 하는 경우와 불필요한 오버씽킹은 아주 간단히 구별된다. 오버씽킹의 대부분은 '만약'이라는 가정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중략

 

오버씽킹으로 생기는 부정적 정서는 다음과 같은 생각으로 이어진다.

'나는 혼자야. 아무도 믿을 수가 없어.'

'도대체 집중할 수가 없군.'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지?'

'또 이런 식이야. 나는 어쩔 수가 없나봐!'


 

정말 중요한 일은 어떤 일일까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 오버씽킹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정말 중요한 일에 몰입하면 된다. 여기서 정말 중요한 일이란 자기가 정말 재미있어 하는 일을 뜻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들이 당황해 한다. 재미있는 일이 중요한 일이라니? 이렇게 묻는 이들에게 나는 되묻는다. 아닌가? 자기가 정말 재미있어하는 일만큼 중요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삶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내가 행복해하고 재미있어 하는 일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우리는 평생 주어진 의무를 다하며 그저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견디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보다 중요한 것이 있는 것처럼 착각한다. 삶의 목적이 되는 행복과 재미를 추구하면 뭔가 죄의식을 느낀다. 잘못된 생각이다. 모두 먹고 살기에 급급했던 시절이 남긴 피해의식이다.

 

중요한 일을 찾아서 그것에 푹 빠지는 재미처럼 오버씽킹을 예방하기 좋은 방법은 없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몰입flow' 라고 한다. 구태여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무아지경' 정도가 적당하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푹 빠져서 시간가는 줄 모르는 상태를 뜻한다.

 

낚시의 예를 들어보자. 낚시를 하면서 인생과 우주 전반을 생각한다는 낚시꾼처럼 가짜는 없다. 진짜 낚시꾼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오직 찌 끝만 바라볼 뿐이다.


 

새로운 것은 없다

 

창의성에 대한 정의가 잘못되어 있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평생 지혜를 추구했던 솔로몬의 이런 최후의 탄식을 빌리지 않더라도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그런 종류의 새로운 것은 없다. 하지만 우리가 새롭다고 느끼는 것들은 분명히 있다. 예전에 있던 것들이 다른 맥락에 놓이면 우리는 새롭게 느낀다.

 

정확히 말해 창의성이란 아주 익숙한 것을 다른 맥락에 놓아 새롭게 느끼게 하는 능력을 뜻한다. 앞서 힘들게 정의했던 정보와 지식의 관계를 통해 설명하자면 창의성이란 다음의 두 가지로 정의된다.

 

(1) 정보와 정보들의 관계를 이전과 다르게 정의하는 능력

(2) 정보의 맥락을 바꾸는 능력


 

모나리자의 미소는 왜 아름다울까

 

다빈치는 수백 가지의 눈의 습작을 가지고 있었다. 찢어진 눈, 젖은 눈, 늘어진 눈 등. 뿐만 아니라 코, 입, 머리, 턱 등과 같은 얼굴 부위의 각 부분에 관해서도 수백 수천 가지의 습작을 모아놓고 있었다. 오늘날의 표현을 쓰자면 얼굴 각 부위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었던 것이다. 얼굴의 다양한 부위에 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다빈치가 작품을 그려낸 방식은 지극히 단순하다. 얼굴의 각 부위를 다양하게 조합해 보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찢어진 눈, 높은 코, 늘어진 턱, 얇은 입술 등을 조합하면 아주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될 것이다.

 

모나리자는 다빈치가 모아놓은 데이터베이스에서 뽑아낸 부분들의 최고의 조합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마이클 미칼코 Micheal Michalko 는 그렇게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여 정보의 재조합을 통해 이뤄지는 창의적 작업을 '다빈치 기법'이라고 칭하였다.


 

어른들은 낯선 것을 익숙하게 만들고, 아이들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든다

 

쉰 살 먹은 사람의 창의력은 다섯 살 어린이의 창의력에 4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어린이가 창의적인 이유는 '낯설게 하기'를 통해  끊임없이 재미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재미를 추구하기 때문에 아무의미 없는 돌 조각으로도 하루종일 놀 수 있다.

 

아이들의 놀이에서는 정보의 재조합을 통한 '낯설게 하기'가 지속적으로 일어난다. 예를 들어 어른들은 빗자루를 가지고 청소할 생각 이외에는 어떠한 상상도 하지 못하지만 아이들은 빗자루를 말처럼 타고, 총싸움 칼싸움을 하다가,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간다. 빗자루라는 정보의 맥락이 청소 도구의 맥락에서 하늘을 날아가는 맥락으로 바뀌면서 빗자루의 '낯설게 하기'가 일어난다. 그 결과로 얻어지는 것은 '재미'이다.


 

놀아본 사람만이 창의적일 수 있는 이유

 

창의성의 본질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창의성은 정보의 집적과 조화를 통해 가능하다. 조금 어려운 내용 같지만 간단한 이야기다. 재료가 다양해야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다. 아무리 훌륭한 요리사도 라면 한 봉지만 가지고는 어떠한 요리도 할 수 없다. 그저 똑같은 라면만 끓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정보들의 관계를 새롭게 구축해서 창의적 지식을 만들어내려면 정보가 데이터베이스화되어 언제라도 끄집어내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중략

 

디플롬 논문을 완성하기까지 이 카드 분류 방식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나는 디플롬 논문을 위해 약 2,000장의 카드를 체계적으로 작성하였다. 앞서 설명한 정보와 지식의 개념적 차이를 통해 설명하자면 논문 준비 기간에 작성된 2,000장의 카드들은 내 정보였다. 내 디플롬 논문은 이 정보들을 재조직화하여 생상된 지식인 것이다.

 

-중략

 

데이터베이스의 사용은 단지 안정적인 독일 생활에 도움이 된 것만이 아니다. 더 근본적인 변화는 데이터베이스 관리 경험을 통해 내 사고의 틀 자체가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우선 책을 읽으면 저자의 논리에 따라가기 급급하던 내 독서 방식에서 데이터베이스 관리를 통해 질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내가 정하는 키워드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분류된 한 권의 책은 이후 내가 내 필요에 따라 꺼냈을 때는 전혀 다른 내용이 되어 있었다. 그 후에 축적된 비슷한 다양한 개념들이 연결되어 올라오기 때문이었다. 지식 생산의 과정이 눈에 보였다. 지식은 정보와 정보들의 관계였다. 그 정보 관계를 새롭게 구성할 수 있는 이가 새로운 지식을 구성해 낼 수 있는 것이다.

 

독일어로 학문을 'Wissenshaft'라고 한다. 이는 '지식' 혹은 '앎'을 뜻하는 'Wissen' 과 '만들다' '창조하다'는 의미의 'schaffen'이 합쳐져 만들어진 용어다. 학문이란 지식이 만들어진 결과라는 것이다.


 

창의성은 '아마도.......'에서 시작된다

 

미국의 논리철학자 퍼어스 Peirce는 법칙이 존재하고 주어진 사례를 통해 결과를 만들어내는 연역법을 '설명적 추론 explicative inference'이라고 정의한다. 주어진 사례와 결과를 통해 결론을 이끌어 내는 귀납법은 '평가적 추론 evaluative inference'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연역법은 어떤 것이 '반드시 must be' 어떠하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고 귀납법은 무엇이 '실제로 actually'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만을 보여줄 뿐이라고 비판한다. 그래서 퍼어스는 연역법, 귀납법을 넘어서는 창의적 사유를 가능케 하는 제 3의 추론 방식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그는 '유추법 abduction' 이라 부른다. 유추법은 '아마도may be' 라는 추측에 기초하는 '창의적 추론 innovative inference' 이다. 유추법은 연역법을 뒤집음으로써 가능해진다.

 

연역법은 다음과 같은 '법칙+사례=결과'의 과정으로 이뤄진다.

 

법칙_모든 심리학자는 또라이다

사례_김정운은 심리학자다

결과_따라서 김정운은 또라이다

 

그러나 퍼어스가 주장하는 유추법은 '법칙+결과=사례'의 과정으로 구성된다.

 

법칙_모든 심리학자는 또라이다

결과_김정운은 또라이다

사례_아마도 김정운은 심리학자일 것이다.


 

 

휴테크_사소한 재미에 목숨 걸자

 

휴테크는  나처럼 억지로라도 실천해야 한다. 휴테크란 단순히 쉬는 기술, 노는 기술이 아니라 행복해지기 위한 기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행복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좋은 집을 사고 폼 나는 자동차를 굴리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행복론을 '결과로서의 행복론'이라고 정의한다.

 

조건이 채워진 결과로서의 행복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로서의 행복론이 가진 문제는 그 조건을 채우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사실에 있다. 내 이름으로 된 30평 아파트만 생겨도 온 세상을 가질 것처럼 행복했지만, 곧 40평대 아파트가 눈에 들어오면서 못마땅해지기 시작한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굴러만 다녀도 행복했던 시절이 어제 같은데 풀 옵션의 세단이 눈에 자주 띈다. 결국 결과로서의 행복론은 사람을 영원히 불행하게 만든다. 항상 새로운 조건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나의 조건을 충족시키면 또 다른 행복이 조건으로 나타나고.

 

또 다른 행복론이 있다. '과정으로서의 행복론'이다. 어떤 조건이 이뤄져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어떤 일에 몰두할 때 행복하다는 주장이다. 사람은 심리학적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몰두할 때 행복하다는 주장이다. 사람은 심리학적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몰두할 때 가장 행복한 느낌을 (행복하게) 느낀다고 한다. 무아지경을 느끼며 시간가는 줄 모르는 이러한 심리적 차원을 전문 용어로 플로우 flow 라고 한다. 마치 어렸을 때 저녁 먹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해질 때까지 놀았던 그러한 느낌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과정으로서의 행복록'을 가진 사람은 '결과로서의 행복론'을 가진 사람에 비해 훨씬 쉽게 행복해질 수 있다. 행복해지고 싶으면 내가 좋아하는 일에 바로 몰두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정으로서의 행복론을 가진다고 할지라도 그리 쉽게 행복해질 수 없다. 자기가 재미있어 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항상 행복하다. 아이들은 항상 재미있는 일만 찾기 때문이다. 아무리 슬픈 일이 있어도 금방 잊어버린다.

 

-중략

 

한국에서 영화가 유난히 잘되는 이유는 이 땅에 자기가 정말 재미있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영화는 2시간의 짧은 순간에 모든 재미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나는 영화를 보는 동안 주어진 정보만 성실하게 수용하면 된다. 내가 앞서서 고민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아주 수동적인 편안함만 유지하면 된다. 내가 재미있는 것이 무엇인지 판단할 능력이 없는 이들에게 영화처럼 마음 편한 오락거리는 없다.

 

-중략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내 재미를 찾아야 한다. 사소한 재미가 진짜 재미다. 세상이 뒤집어지는 것 같은 통쾌함을 주는 영화의 재미는 길어야 두 시간이다. 그러나 사소한 재미는 평생 간다.

 

-중략

 

여행을 가더라도 남들과 구별되는 특별한 여행을 하자. 선사 시대의 유적을 찾아다니는 여행, 특별한 식물과 곤충을 찾아다니는 여행, 역사적 사건을 뒤쫓아 다니는 테마 여행과 같이 스토리가 있는 여행을 즐겨야 한다. 영화 또한 마찬가지다. 특별한 장르나 특별한 감독의 영화를 즐겨야 한다. 적어도 내가 즐기는 것에서만큼은 최고가 되어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내 존재는 직장에서의 직위, 가족 안에서의 관계로 확인된다. 그러나 이러한 지위나 관계는 항상 변한다. 심지어는 가족 관계에서 주어지는 엄마, 아내로서의 존재마저 그 의미가 항상 상쾌하고 기쁜 것만은 아니다.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에 지쳐 있을 때 나를 구원해줄 수 있는 것은 바로 나만이 할 수 있는 사소한 재미뿐이다. 나이가 들수록 내 존재는 내가 즐기는 취미를 통해 확인된다.

 

-중략

 

현대를 사는 우리가 이런 사소한 재미를 찾지 못하는 이유는 재미에 대한 환상 때문이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자기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재미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미는 엄청나고 세상이 뒤집어지는 것과 같은 환희를 느껴야 한다는 환상을 갖고 있다. 정말 못 노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그러다 보니 휴가를 가서도 무슨 엄청난 재미가 없는가하고 거리를 헤매다가 결국은 폭탄주로 밤을 지새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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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하게 즐기는 사람이 많은 사회는 건강한 사회다. 다양하게 즐길 것이 많기 때문이다. 즐길 것이 많다는 이야기는 문화적 다양성이 담보된다는 이야기다. 획일적인 사회는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 21세기 국가 경쟁력은 얼마나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확보하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일'과 '안 중요한 일' 바꾸기_게슈탈트 원리

 

오스트레일리아의 대표적 관광 도시인 이곳에서는 주말이면 도시 곳곳에서 갖가지 퍼포먼스가 열린다. 별로 신통치 않은 재주도 이곳에서는 관객을 모을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모습에도 기꺼이 사진기 셔터를 누른다. 사진 가운데에 항상 자신이 들어가야만 하는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이곳의 거리가 즐거운 이유는 모두들 기꺼이 관객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동네 축제가 한결같이 연예인 사회의 노래자랑으로 끝나는 이유는 관객이 되길 거부하는 우리의 놀이문화 때문이다. 유명 연예인이 아니면 아무도 기꺼이 관객이 되어 주질 않는다. 유명 연예인만으로는 부족하다. 관객들에게도 무대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재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관객으로 시작해서 관객으로 끝나는 퍼포먼스는 너무 시시하게 생각한다. 차라리 쇼핑센터에서 주인공으로 대접받는 편이 훨씬 재미있다.

 

하지만 이곳의 거리는 다르다. 아빠는 아이를 목마 태워주며 관객이 되는 방법을 교육시킨다. 관객이 있어야 주인공이 생긴다는 아주 평범한 질서를 어릴 때부터 가르쳐준다. 관객을 해본 사람만이 주인공을 오래할 수 있다. 관객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기 때문이다.

 

관객과 주인공은 항상 하나다. 상대방이 존재하지 않으면 자신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게슈탈트Gestalt 원리로 설명한다. 게슈탈트란 통합된 전체를 의미한다. 주인공과 관객이 동시에 통합된 전체로 존재해야 각각의 의미가 부여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세상을 볼 때 자신에게 중요한 일은 지각의 중심, 즉 전경으로 놓고 그 이외의 것들은 배경으로 보낸다. 이 곳, 강가의 노천까페에서 한가롭게 책을 읽는 젊은 엄마의 모습이 내겐 전경이 되고, 비키니 차림으로 파란 잔디 위에서 일광욕을 하는 아가씨들이 배경이 된다. 나는 야한 차림의 여성들을 보고도 아무런 느낌이 없는 나이가 절대 아니다. 까페에 들어와 지금의 자리에 앉은 이유는 비키니의 여성들이 잘 보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조금 전만 해도 비키니의 여성들이 전경이 되고 책 읽는 튼튼한 엄마는 배경에 불과했다. 하지만 내가 컴퓨터를 켜고 휴식의 의미에 관한 원고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전경과 배경은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아이를 모래사장에서 놀게 하고, 그 짧은 시간을 이용해 책을 보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등에 수영복 끈 자락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비키니의 아가씨보다는 훨씬 휴식의 의미에 가깝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신에게 의미 있는 대상을 전경으로 두고 나머지를 배겨으로 보내는 작업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을 전문 용어로 '게슈탈트'를 형성한다고 이야기한다. 마음이 건강한 사람은 전경과 배경이 끊임없이 바뀐다. 또 자신에게 중요한 것을 지속적으로 전경에 올려놓을 줄도 안다.

 

전경과 배경을 구분 못하는 사람이 가끔 있다. 초점이 맞지 않는 고장 난 카메라처럼 세상이 항상 뿌옇다. 그리고 하는 이야기는 항상 세상이 뿌옇다는 이야기뿐이다. 이런 사람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도대체 뭘 이야기하려는지 도통 헷갈린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는지 알 수가 없다. 그저 남들이 하는 이야기를 반복할 뿐이다.

 

「조선일보」를 읽은 날에는  「조선일보」의 초점으로 이야기하고 「중앙일보」를 읽은 날에는  「중앙일보」의 초점으로 이야기한다. 가끔 자신과는 전혀 안 어울리는 이야기도 한다. 그런 날에는 인터넷으로 「오마이뉴스」를 읽었음에 분명하다. 내가 세상을 보는 초점이 분명치 않으니 항상 남의 초점에 끌려 다닐 수밖에...

 

뭐 먹을까를 묻는데 '아무거나'를 대답하는 사람처럼 답답한 경우도 없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의 게슈탈트가 형성되지 않은 사람이다. 내가 여가 정보학과 교수라니까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어딜 가면 재미있어요?" "뭘 하면서 주말을 보내면 좋을까요?"

그럼 내가 되묻는다.

"당신은 좋아하는 게 뭐예요?"

 

도대체 이 사람이 뭘 좋아하는지 알아야 어딜 가면 재미있는지, 뭘하면 재미있는지 알려줄 것 아닌가? 그러나 이렇게 내가 물으면 대부분 당황한다. 한참 생각하다가 남들 다하는 '여행' '영화' '먹는 것'이라고 머쓱해 하며 대답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자기가 왜 사는지를 모르는 사람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일수록 의외로 이렇게 게슈탈트가 형성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중략

 

여가를 보낸다는 것은 여유를 갖는다는 이야기다. 지금까지 내게 너무나 중요했던 것을 배경으로 보내고 그동안 잊고 살아왔던 것들, 배경에만 흐릿하게 있어 왔던 것들 (예를 들면, 아래, 아이들, 내 젊은 날의 꿈같은 것들)을 전경으로 끌어올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전경과 배경을 유연하게 뒤바꿀 수 있는 능력은 쉬어가는 여유가 없으면 절대 생기지 않는다.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이 아름다운 시대는 지났다. 그런 사람은 남과 전혀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자폐증 환자 시대를 사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시대가 바뀐 것을 모른다. 아직도 자신이 승승장구하던 시절인 줄 착각하며 자신의 가치를 강요한다. 이런 사람이 위험한 것은 자신의 자폐증을 남에게 전염시키기 때문이다. 이런 증세의 유일한 처방은 여유를 갖는 법을 배우는 것뿐이다. 이렇게 노천까페에 앉아 스스로 찬란한 풍광의 배경이 되는 방법부터 배워야 한다. 스스로 배경이 되고 관객이 되어 전체와 조화를 이루는 경험을 해야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리더는 전경과 배경을 통합한 전체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정해진 분량의 원고를 끝냈으니, 이제 나도 전경과 배경을 바꿔야겠다. 비키니의 아가씨들을 맘껏 전경으로 올리고 튼튼한 아줌마는 뿌연 배경으로 보내겠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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