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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찾은 제주 - 1일차, 이중섭 거리, 대포주상절리대

Actruce 2025. 3. 5. 23:24

제주도 1일차, 2025.3.5(수)

 

아내가 만삭일 때 태교 여행으로 2022년에 들른 이후 3년 만에 제주를 다시 찾았다. 이번엔 나 혼자였다. 복잡한 머리도 식히고 최근에 일어난 어수선한 일들도 정리한다는 심산이었다. 물론 첫 째를 가졌을 때 제주도의 정기를 받았다고 아내에게 자랑하고선 둘째를 가지려면 나혼자 제주도에 다녀 와야겠다는 그럴듯한 핑계도 대었지만 말이다.

 

실제로 그랬다. 첫 번째 나홀로 제주 여행에서 바퀴벌레나 나오던 허름한 대정읍 펜션에서 둘째날 뜻하지 않게 일출을 구경하고 송악산 둘레길을 나홀로 걸으며 자양을 보충한 것이 임신에 꽤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둘째를 계획하며 나 스스로 제주를 다시 찾아왔다.

 

언제나 제주는 미지의 섬이다. 어서와 하며 반겨줄듯 하다가도 낯선 타지사람이 쉽사리 적응하기 어려운 섬이다. 제주 여행은 어디를 갈지부터가 고민이었다. 보다 정확히는 어디 숙소를 잡을 것인가가 골치아팠다. 제주 조천, 구좌 정도를 제외하면 웬만한 곳은 다 가봤는데, 막상 어디 한군데 숙소를 정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게스트하우스는 저렴하지만 공동 욕실을 쓰는 곳이 많아 나한테는 맞지 않았다. 펜션들도 알아봤으나 독특하긴 하지만 한 두가지씩 단점들이 있었다. 제주시내 호텔들은 낡았고, 안 좋은 리뷰가 한 두개는 섞여 있어서 탐탐치 않았다. 결국 고르고 골라서 찾은 곳이 제주 항공우주 호텔이었다. 이름은 좀 특이했으나 청결하게 관리되고 방도 넓고 데스크도 있어서 글을 쓰거나 책을 읽기 좋았다. 

 

항공권은 티웨이 항공. 최근 여러 저가항공의 비행사고로 인해서 꺼름칙한 부분이 여전히 있었으나, 대한항공이랑은 가격 차이가 너무 심했다. 숙소와 항공권을 정하고 남은 건 렌트카. 제주패스 앱을 통해서 렌트카를 예약했다. 기종은 2025 더 뉴 아반테 CN7. 차를 인수받고 처음 본 소감은 ‘내부가 생각보다 잘 빠졌네.’ 였다. 부모님 자동차도 아반테인데, 이것과는 다른 모델이라 그런지 내부 구성이 많이 달랐다.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 250 km 정도 몰아본 결과 제주도에서는 꽤 쓸만하는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대전에서 청주공항까지 가는 교통편만 알아보면 되는데 대전 유성 시외 터미널에서 청주공항가는 시외버스가 있었다. 예전에는 청사에서 청주공항가는 편이 있었는데, 코로나 이후 없어진 것 같았다. 불행중 다행으로 유성에서라도 갈 수 있겠다 싶었는데 1시 비행기인데 10시반 버스가 매진이었다. 대전복합 터미널에서 가는 것이나 대전역에서 청주공항역 충북선 무궁화호를 타는 방법도 있는데, 모두 9시 이후에 탈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9시 버스를 우선 예매해 두고 기도를 드렸는데 출발날 7시 반에 일어나 보니 10시반 버스가 한 자리 비어 야호를 외쳤다. 이번 여행. 뭔가 느낌이 좋았다. 공항에서 점심도 먹고 탄산수를 먹으며 여행 계획을 세웠다. 비행기는 정시에 출발해 정시에 제주 공항에 도착했다.

 

제주에 도착한 느낌도 갖지 못한채, 셔틀버스를 타고 렌트카를 대여했다. 처음 만난 아방이를 몰고 1시간 가량 뭐에 쫓기는 운전해서 이중섭 미술관에 도착했다. 그런데 아뿔싸. 이중섭 미술관이 잠정 폐관한 것이었다. 분명히 네이버 지도에는 영업중이라고 되어 있었단 말이다. 이중섭 미술관은 3층 건물로 증축이 결정되었고, 27년까지 공사가 진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중섭 생가만 덩그러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내려오는 길에 이중섭 무료 전시관이 열린 것을 운 좋게 확인하고 들어섰다. “이중섭 아카이브 전시 1부” 로 이중섭이 태어난 1916년 부터 1943년 일본 유학시기 까지의 기록들을 정리해서 보여주는 소규모 전시였다. 이중섭이 1916년 부터 1956년까지 40년 밖에 살지 못했다는 것과 일본 여자인 야마모토 마사코와 결혼한 것도 처음 안 사실이었다. 평안북도의 비교적 부농의 아들로 태어나 고등학교 졸업 후 일본 제국미술대학에서 유학을 했고, 거기서 사귄 부인과 원산으로 귀국했으나 6.25 전쟁 발발로 부산으로 피난하였고, 이후 다시 서귀포로 옮겨와 작품들을 남겼다. 이중섭이 죽은 마지막은 굉장히 쓸쓸했는데, 서대문 적십자 병원에서 곡기를 끊다시피하다 영양실조와 간염으로 홀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이 얼마나 불꽃 같은 삶인가!

 

많이 소개된 내용이지만 이중섭의 둘도 없는 친구 시인 구상은 이렇게 썼다.

 

중섭은 참으로 놀랍게도 그 참혹 속에서 그림을 그려서 남겼다. 판자집 골방에서 시루의 콩나물처럼 끼어 살면서도 그렸고, 부두에서 짐을 뷔다 쉬는 참에도 그렸고, 다방 한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서도 그렸고, 대포집 목로판에서도 그렸고, 켄버스나 스케치북이 없으니 합판이나 맨종이, 담뱃값 은지에다 그렸고, 물감과 붓이 없으니 연필이나 못으로 그렸고, 잘 곳과 먹을 것이 없어도 그렸고, 외로워도 슬퍼도 그렸고, 부산, 제주도, 통영, 전주, 대구, 서울 등을 표랑전전하면서도 그저 그리고 또 그렸다.

 

참으로 그림에 대단한 열정을 지는 이중섭이었다. 온갖 핑계로 할 일을 하지 않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이래서 뭐가 되겠나. 참으로 본받을 부분이다.

 

이중섭 거리에서 윤하에게 줄 양 인형을 샀다. 한 쪽 뿔에 감귤 챙을 쓰고 있는 귀여운 인형이었다. 기념품 가게 아주머니는 주변 올레시장에만 관광객이 오고 아래 이중섭거리의 많은 상점들에는 손님이 없다고 갑자기 하소연을 했다. 잠자코 맞장구 치면서 이중섭 미술관 증축에 따라 이중섭 거리 예산이 감축되어 거리 공연이나 상점들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하고 있구나라고 생각되었다. 3년전 태교 여행 때 찾은 이중섭 거리보다 좀 더 을씨년 스럽고 사람이 거의 없어 안타까웠다. 올레시장 뿐만 아니라 이중섭 거리도 같이 활기를 띄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의 마지막 여행지는 대포주상절리대였다. 제주도에 오면 으레 들리고 싶은 곳인데 일정상 오늘만 될 것 같아서 바쁜 걸음을 했다. 폐장 20분을 남기고 부랴부랴 들어섰는데 오늘은 파도가 잠잠한 탓인지 주상절리대에 큰 파도들이 쳐서 시원한 포말 기둥을 만드는 것을 볼 수는 없었다. 첫 날의 빡빡한 일정 속에서 그래도 계획했던 두 군데를 다 본데 만족해야 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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